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이자 대한민국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이상득 전 부의장이 2024년 10월 23일, 향년 89세로 별세했습니다. 오랜 정치 경력과 다양한 공직 경험으로 정계에 큰 족적을 남긴 그는, 경북 영일 출신으로 포항 동지상고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코오롱그룹에서 빠르게 승진하여 대표직을 역임한 인물입니다.
1. 소식
코오롱에서 국회로… 이 전 부의장의 정치 입문
이상득 전 부의장은 1961년 코오롱그룹에 입사하여 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후,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경북 영일·울릉 지역구에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그 후로도 그는 14대부터 18대 국회까지 총 5선을 기록하며 경북 포항남·울릉 지역구를 대표하는 중진 정치인으로 활약했습니다.
그의 정치 경력은 국회부의장을 비롯해 국회 운영위원장, 재정경제위원장, 한일의원연맹 회장 등 다양한 직책을 맡으며 널리 인정받았습니다. 특히 한나라당 최고위원과 사무총장 등의 당내 주요 직책을 거치며 당 내외에서 큰 신뢰를 얻었던 그는, 정치적 갈등 조정 능력에서도 탁월함을 보였습니다.
'미스터 위기관리'라는 별명, IMF 외환위기에서의 역할
이 전 부의장은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국회 재정경제위원장으로서 금융개혁법 통과를 이끌어내며 ‘미스터 위기 관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는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대한민국의 금융 구조 개혁에 중요한 기여를 했고, 이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또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 간의 갈등을 조정하여 당의 단합을 이끌어낸 바 있습니다. 이러한 갈등 조정 능력 덕분에 그는 당내에서 신뢰할 수 있는 조정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외교적 기여와 업적
이 전 부의장은 국내 정치뿐만 아니라 외교 분야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2006년 미국을 방문하였을 때, 그는 전시작전권 조기 반환 문제를 제기하며 대한민국의 군사적 자주성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2007년 조선왕실의궤 반환을 위한 외교적 노력에도 힘을 쏟으며, 한국의 역사와 문화유산 보호에 기여했습니다.
특히 2010년, 그는 대통령 특사로 리비아에 억류된 요원들을 석방시키는 데 성공하는 등 외교적인 성과를 거두며, 그가 가진 폭넓은 정치적 영향력을 다시 한 번 증명했습니다.
가족과 유족
이 전 부의장의 유족으로는 아내 최신자 씨와 세 자녀인 이지형, 이성은, 이지은 씨, 그리고 사위 구본천, 오정석 씨가 있습니다. 그의 별세 소식에 많은 정치인들과 국민들이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으며, 그의 정치적 유산과 기여는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
2. 이상득 프로필
이상득 프로필
- 이름: 이상득 (李相得)
- 출생일: 1935년 11월 29일
- 사망일: 2024년 10월 23일
- 출신지: 일본 오사카
- 직업: 정치인
- 가족: 제17대 대통령 이명박의 형
학력
- 동지상고 졸업
-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학사, 1961년)
경력
- 육군사관학교 15기 입학 후 자퇴
- 한국 나이롱 공채 1기 입사 (1961년)
- 1973년: 이사
- 1975년: 상무
- 1976년: 영업본부장
- 1977년: 전무
- 1978년: 부사장
- 코오롱상사 사장 (1984년)
정치 경력
- 제13대부터 제18대까지 국회의원
- 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1981년)
주요 사건
- 부정 자금 사건: 2011년 12월, 비서 이름으로 된 차명계좌에서 수억 원의 부정 자금이 드러남. 이후 2012년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됨.
- 재판 결과:
- 2013년 1월: 징역 3년 구형
- 2014년 6월: 징역 1년 2월, 추징금 4억 5000여만 원 선고
- 2014년 9월: 출소
기타
- 신한금융지주 의혹: 2008년 이명박 대통령 당선 축하금 명목으로 3억 원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제기됨. 검찰의 재수사에서도 수령자와 명목은 확인되지 않음.
3. 결론: 이상득 전 부의장의 정치적 유산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은 대한민국 정치사에 깊은 흔적을 남긴 인물로, 국내외에서의 정치적, 외교적 성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IMF 외환위기 당시 금융개혁법 통과를 주도하며 **‘미스터 위기관리’**라는 별명을 얻었고, 정치적 갈등 조정에 능숙하여 당내 단합을 이끌어낸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습니다.
그는 서민 경제와 외교적 현안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번 별세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아쉬움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상득 전 부의장의 정치적 유산은 대한민국 정치사에 영원히 남을 것이며, 그가 보여준 헌신과 노력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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